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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신앙의 기본

by 성경토크 2024.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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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기본

본문 : 5:38-42

 

(마 5:38-42, 개정)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금주의 말씀은 4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를 중심해서 삶의 방향과 지표를 삼는데 역점을 둔 근본적인 말씀이 되겠습니다.

금주의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먼저는 그 때 당시 예수님의 상황과 심정을 이해하지 않고는 말씀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종교는 사랑에서 풀어지고 사랑은 진리에서 진리는 심정에서 풀어진다는 사실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일이지 않습니까?

 

여러분들 소로 비유한다면 소가 되새김질을 하지 않으면 죽듯이 어찌 지금 이 자리에서 말씀을 모두 깨달을려고 합니까? 항상 말씀을 상고하면서 생활 가운데 적용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왜? 갑자기 말씀이 옛날에나 했었던 마태복음 설교로 되돌아 왔을까요?

 

기본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이 이렇게 기본적인 것으로 돌아간 것도 여기의 수학 시간과 같은 입장이니 우리 모두 자각해야 될 입장입니다. 운동하는 사람은 한 동작 한 동작 정확하게 익혀가야 됩니다.

태권도를 하는데 기본 동작이 되지 않는 가운데 다음 동작을 할려고 하면 제대로 되겠습니까?

결국 기본도 되지 않은 가운데 하다가 태권도만 망쳐놓게 되니 어떠한 일이 있어도 기본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리가 굳었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한 것이니 굳지 않게 해야 됩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잘하고 싶어하는데 잘하는 방법은 기본을 철통같이 갖추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몸에 있어서의 기본은 당연히 건강이 되겠지요.

그리고 강한 군인이 되려면 그에 따르는 기본적인 것이 있는데 그 기본을 갖추기 위해서 군인은 먼저 훈련을 받아서 기본적인 한 동작 한 동작을 익혀갑니다.

일단 준비하는 훈련기간이 끝나면 말하는 것부터 행동하는 것 인격까지도 군인다운 면모를 갖추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일정한 훈련기간이 끝나면 어느 정도의 단계에 오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을 중심한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직접 복음전선에 나아가기 전에 강조하신 기본적인 말씀입니다.

그러면 먼저 당시 예수님의 입장에 대해서 약간만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3장까지는 예수님이 훈련하시기 이전으로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하며 그를 맞기 위한 준비의 내용이 나와 있으며 예수님께서는 세례 받은 내용만 나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3장까지는 세례 요한의 활동에 대한 것 즉 그의 사명에 대해서 나와 있습니다.

그러다가 마4장부터 예수님에 관한 것이 나오는데 예수님이 40일 동안 금식기도한 것이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금식기도를 한 것은 이것을 통해서 앞으로 할일에 대한 준비를 해야될 입장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과거 종교인들이 4천년 전부터 예수님 시대까지 흑암의 세계에 뺏겼던 것을 예수님이 싸워서 이김으로써 그들로 부터 인정을 받아 하늘의 도리를 세워야 될 입장이었습니다.

사탄의 세계도 원리 원칙적인 법칙이 있어서 그들로 부터도 법칙대로 싸워서 인정을 받아야만 그들로 부터 벗어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40일 금식기도로써 기준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사탄은 결코 여러분을 봐준다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죄가 있으면 그것을 들추어내는데 여념이 없으니 그에 대한 기준을 세워나가야만 그들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열대지방에서 40일 금식의 기준을 세운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빵 문제는 상당히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인데 예수님께서는 이 문제도 극복하셨고 많은 사람들이 빠져있는 명예욕과 권세욕 물질욕 등으로 부터도 빠져 나와 승리 했으니 그 누구도 세우지 못한 기준을 세워 놓았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인해서 적이 총을 쏘다가 총알이 떨어져 더이상 쏘지 못하고 도망가듯이 사탄들도 더이상은 시험하지 못하고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천사들이 나와 예수님의 수종을 들었다고 마411절에 나와 있었습니다.

금은 금끼리, 은은 은끼리 뭉쳐지듯이 여러분들도 예수님과 같이 사탄과 싸워서 승리해야만 예수님과 일체될 수 있으니

! 승리해야 됩니다.

 

다음에 주님은 납달리와 스불론 땅으로 가셔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4:13~)

그 때에 주님의 복음을 접한 사람들이 내가 빛을 봤다.”고 말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빛이라고 표현했으니 상당히 문학적 이상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그 말은 이미 옛날 선지자가 한말(4:14)을 응한 것이라고 하심으로써 과거 선지자들이 한 것을 그 시대에 갖다 맞추어 풀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구약 말씀의 상징과 비유를 풀어 주시면서 나갔습니다.

 

주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복음을 전파하시다가 특별히 주님과 뭉쳐진 자들이 있었는데 이때에 사도된 베드로, 안드레, 요한을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런 말씀은 만나자마자 처음부터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먼저 오랫동안 주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후에 그들의 인생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에 답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이 주님께서 무조건 따르란다고 따랐겠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생활고는 대단히 뿌리깊은 나무였습니다.

세상은 따라 오라는 사람도 많지만 책임을 져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책임을 져줍니다.

또한 세상에는 자기를 믿어 달라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만약 믿었다가 속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베드로 등 이들 모두는 어부였습니다.

바닷가라는 환경과 어부라는 직업이 상당히 거칠어서 보통 사람보다 다루기가 좀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이 의식주에는 별로 구애됨이 없이 지내었으니 인생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못해서 고민하던 중에 예수님의 말씀으로써 해결을 보게 되었습니다.

환경상 직업상 거칠고 과격한 이들! 탕자처럼 방황하던 이들을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구름같이 정화시켜서 주님의 가까운 제자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다음에 주님은 회당에서 말씀하시는 가운데 건강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병은 병에 걸리고 싶어서 병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환경 가운데 조심해서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병든자는 기도하고 간구해서 그 믿음대로 병고침을 받아야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의 병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대부분의 병은 중풍병자 또는 귀신 들린자 혹은 간질환자였는데 이들을 치료해주니 많은 무리들이 이 소문을 듣고 주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또 다시 주님이 오신 다면 이와같은 입장일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러한 입장으로 나아가 달라는 것이 하늘의 입장에서 하는 말씀입니다.

이때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따르니까 예수님께서는 좀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가서 말씀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바라셨습니다.

그때 당시 주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주님이 가는 대로 따라다니는 입장이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은 팔복장

그러다가 마태복음 5장에서부터 주님과 무리들은 산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주님은 복 있는 자에 대한 설교를 해서 8복에 대한 정의를 내렸습니다.

8복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마5:3)

자기는 이제 다 알아서 더이상 배울 것이 없으니 다 되었다고 하는 사람은 복이 없는 자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공부하라!”고 했는데 다되었다.”고하면 그는 정말 복 없는 자이니 영적으로 육적으로 부족을 느끼는 자는 복 있는 자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했습니다.

천국은 곧 예수님 자신으로 천국인 예수님 자신을 유형적인 비유로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하신 말씀과 연결시켜 봅니다.

 

애통해 하는 자는 복 있는 자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마5:4)

이전에는 애통해하는 자는 복이 없어서 항상 슬퍼해야만 했으나 이제는 위로할 자가 생겼으니 주님을 두고 한 말입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부모도 형제도 위로자가 되지 못했지만 결혼을 하면 애인이 그 위로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위로하심은 무조건적인 위로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위로이니 다른 사람 만명의 위로보다 그분의 한명의 위로가 더욱 복되다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마5:5)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렸을 때는 온유하다가도 나이가 들고 세상살이에 젖어들다보면 마음이 강팍해지고 호랑이 같이 성질이 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동물들 가운데에서도 온유한 동물이 있고 호랑이나 이리 같은 강팍하고 거칠은 동물이 있는데 강한 동물보다는 온유하고 약한 동물의 활동범위가 훨씬 넓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온유하고 넓은 성품을 가진 사람은 많은 사람을 이해해 주고 용납해 줌으로써 그의 인간관계의 폭이 아주 넓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라 했습니다.(마5:6)

이를 쉽게 이해하면 먹을 것이 없어서 모두 배를 주리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보리밥을 먹어서 배가 부르게 되어서 보리밥도 못 먹어서 주리고 있는자를 손가락질 합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누군가가 나타나서는 자기집에 생일 잔치를 하는데 초대한 손님이 다 오지 않아서 음식이 남아서 그러니 와서 음식을 먹어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생일 잔치집에 가서 진수성찬으로 차린 상을 받았는데 아까 보리밥이라도 먹었던 사람은 배가 불러서 진수성찬을 먹지를 못하나 배고팠던 사람들은 진수성찬을 잔뜩 먹게 되니 여기서는 주린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이제 의에, 선에 주린 자를 채워줄 주인이 나타났으니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이 나타나기 이전에는 보리밥이라도 먹은 자가 복 있는 자이고 주린 자는 복이 없는 자라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 했습니다.(마5:7)

다시 말해서 A라는 사람을 B라는 사람이 긍휼히 여겨주면 B라는 사람은 복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B라는 사람은 C라는 사람이 긍휼히 여겨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험이 들은 사람이 사고나면 반드시 보험혜택을 받는 것처럼 하늘 보험회사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즉 남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반드시 어느 환경 처지에서나 긍휼히 여김을 받는데 중요한 것은 하늘의 긍휼히 여김을 받으니 다른 사람 한명에게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보다 메시야의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마5:8)

각 시대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고싶어 했는데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하면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말은 논리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는 믿기 어려운 말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시대(예수님 시대)에 볼 수 있다고 했으니 하나님을 보고 싶어하는 빌립에게 나를 보았으면 곧 하나님을 본 것이어늘 왜? 하나님만 보여 달라고 하느냐?”고 했습니다.

이는 곧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인성적, 신성적 대리자로써 하나님의 아들의 입장으로 오신 것을 말씀하신 것인데 당시의 유대 종교인들은 예수님을 인정해 주지 않았어요.

그러나 하늘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즉 하나님의 지혜, 재능, 총명, 모략의 신이 그를 통해서 이미 하늘의 뜻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그 뒤에 하나님이 직접오신 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너희는 아버지의 아들을 봤으면 곧 그 아버지를 본 것인데 어찌하여 아버지만 보고자 하느냐?”는 예수님의 답답한 심정이었습니다.

 

화평케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마5:9)

구약시대부터 4천년동안 종의 소리만 들었는데 언제 아들 소리를 들을까?

하지만 화평하면 곧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수 있다는 주님의 말씀이니 곧 화평케하는 자는 복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의로 인하여 핍박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마5:10)

의를 위해서 핍박 받는 자는 현재의 세계에서는 혹 별볼일 없게 보일지 몰라도 그는 진정 복 있는 자라고 주님은 확실히 말씀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주님께서 8복이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이것이면 끝나는 것인줄 알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흔히 5복을 말하는데 천복의 8가지 복 속에는 여기 인간의 오복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주님께서 이제까지 말씀하신 것을 하나씩 풀어 주는 말씀인데 이것도 역시 8복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금 비유

5:13에 보면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소금으로 비유했는데 왜 하필이면 사람을 소금으로 비유 했을까요?

 

예수님의 포도나무 비유

성경에 보면 포도나무 비유가 나오는데 포도나무는 포도 열매를 맺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어서 버릴 수 밖에 없는 나무입니다.

포도나무는 다른 나무하고 달라서 나무가 꼬불꼬불하게 꼬여져 있기 때문에 화목으로도 나무를 이용해서 다른 것을 만들 수도 없는 입장이니 열매를 맺어 줘야만 포도나무로써의 제 구실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소금도 그 특성을 잃어 버리면 쓸모없게 되어 짓밟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마5:14절 이하의 빛의 비유도 소금과 같은 입장이니 이것들은 인간세계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소금의 특성

 

그러면 이러한 소금의 특성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면

 

그 첫째는 세상에서 짠 맛을 내는데 소금을 따라갈 것이 없습니다. 짠 것이 그 특징입니다.

 

둘째는 흔하면서도 귀중한 생활용품입니다.

 

세째로 소금은 빈부귀천 누구를 막론하고 사람이면 다 사용해야 되니 흔하면서도 귀하게 쓰여짐을 받는 것입니다.

음식에도 소금이 들어가지 않으면 맛을 낼수가 없으며 우리 몸에도 염분이 필요하므로 건강상 섭취해야 될 식품이니 참으로 귀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네째로 소금은 썩는 것을 방지해 줍니다.

 

다섯째로 소금은 100% 희생정신입니다.

뻣뻣한 배추를 소금을 넣어 절이면 소금은 100% 녹아서 배추를 부들부들하게 역시 100%의 효과를 냅니다.

배추의 뻣뻣함을 교만함이라고 비유한다면 소금으로 인해 부들부들 해진 것은 겸손함이라고 표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소금과 같이 희생정신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면 겸손해 질 것입니다.

 

여섯째로 소금은 매일 쓰여지는 것이니 귀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딘가에 매일 쓰여 진다는 것은 귀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특히 하늘앞에 매일 쓰여져야 가장 귀하겠지요.

우리가 아무리 귀하게 쓰여지고 싶어도 그것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매일 쓰여지는 자가 될것입니다.

 

여러분!

개인, 가정, 국가, 세계앞에 크게 쓰여짐을 받기를 바랍니다.

 

소금은 이와같이 여섯가지의 주요 특징이 있다고 볼수 있는데 이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소금과 같은 여러분이 되어서 어느 곳에서나 귀하게 쓰여지는 자가 되어 그 환경의 주인이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소금도 등급이 있어서 1등품 2등품 3등품이 있습니다.

소금이 너무 좋다고 아무데서나 무조건 많이 써서는 안됩니다.

그 맛을 잃으면 밟혀 버리는 소금이니 너무 과용해서도 안되고 또 너무 적게 넣어서도 안되니 그 상황과 쓰임새에 맞게 적당량씩 사용하여 귀한 소금인 만큼 가장 가치있게 써야 될 것입니다.

 

소금을 말씀에 비유한다면 소금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짜다면 그런 말씀을 들은 사람은 귀에 거슬리고 부담스러워 지게 될 것이고 또 너무 싱겁게 한다면 그 또한 좋은 방법이 아니니 조금만 잘 못하면 말씀으로 귀한 생명을 죽게하는 경우도 있으니 항상 잘해야 됩니다.

소금과 같은 사람은 참으로 복있는 자이니 소금의 특성대로 사는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이 신앙의 기본적인 것을 지켜 착한 행실을 하면 예수님의 행실을 통해 그때 당시 많은 사람들이 따랐듯이 여러분의 행실을 통해 많은 자들이 따라 올 것입니다.

돼지도 돼지 우리에서 나왔을 때 콩 삶은 것을 한바가지 주면 따라 옵니다.

그러나 사람은 돼지 같은 입장이 아니라 사람의 행실로 특성으로 인해 따라 오게 되어 있습니다.

 

다음에 주님께서는 마5:17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줄 아느냐?

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완전케 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선지자가 내편이고 내가 선지자 편이며 율법이 내편이고 내가 율법편인데 어찌 그것을 폐할 수가 있겠느냐?”

여기의 율법은 구약 말씀을 말한 것이예요.

유대 종교인,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율법 폐하러 온 자라고 몰아 붙이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앞으로 올 메시야 곧 나를 위해서 증거 해 놓고 예언해놓은 구약 말씀을 내가 왜 폐하겠느냐?

율법 말씀은 천지가 없어진다 할지라도 폐하지 않느니라.”

그러나 율법에는 천지가 없어진다는 말은 없거든요.

그러니 너희는 누구든지 계명중에 지극히 적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지켜 행한자는 복 있는 자이니라.”는 주님의 뜨거운 심정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설교를 듣고 있는 너희의 의가 유대 종교인이나 서기관 바리새인 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못 들어 간다는 것입니다.(5:20)

정치도 구시대보다 나아야되고 신앙도 구종교보다 더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이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어제의 날에 의해 오늘이 심판 받게 되고 나아가 자포자기하고 실망하게 됩니다.

어제보다는 구시대보다는 지금의 이 시대가 하나라도 더 배운 만큼 의도 더 나음을 보여야 되지 그렇지 못하면 천국에 못 들어 간다고 말씀했습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거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5:21-26까지의 말씀입니다.

 

유대 종교인들은 걸핏하면 라가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의 마음에만 맞지 않아도 출교시켜 버리곤 했습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예수님보다 더많이 심판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 예수님만 따라다녀도 출교 시켰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적이 있었는데 소경의 눈뜨게된 사실을 소문을 듣고 제사장들이 눈뜬자를 찾아가서 누가 너의 눈을 뜨게해 줬느냐고 묻자 그는 나사렛 예수 곧 구세주가 눈뜨게 해 줬다고 하지 눈뜨게 해줬다고 구세주라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돈다고 그를 꾸짖고는 그의 부모에게 가서 다시 물어봅니다.

그의 부모는 나사렛 예수가 눈을 뜨게 해줬다 고 하면서 그러면 예수가 누구냐는 말에는 대답을 회피하며 아들에게 물어보라고 합니다. ?

소경이었던 자의 부모가 나사렛 예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을까요?

그때 당시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하는 사람은 무조건 출교 시켰기 때문에 그들도 출교당할까봐 겁이 났던 것입니다.

 

유대 종교인들은 신앙적으로 약간 잘못된 것보다도 자기네들의 심정에 맞지 않으면 더욱 라가라고 했으니 미워하는 것이 곧 살인하는 것입니다.

사랑했다면 자기 애인을 조금만 잘못한 것을 가지고 공회에 끌로가서 송사하면서 죄인 취급을 하겠습니까?

사랑하면 결코 그런 행동은 할 수가 없는 것이니 미워했기 때문에 송사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전정으로 사랑한다면 1001000번이라도 용서해주고 싶은 것이 사랑하는 자의 심정입니다.

여러분들 가정에서도 부모님들이 화가 나시면 나가라는 말 하시지요?

 

여러분! 나가라는 말 들어봤습니까?” (아멘)

나만 들어본 줄 알았더니 여러분들도 들어봤군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렇게 화나서 하는 말까지 따른다면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만약 말그대로 따른다면 죽으라고 했을 때 죽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와 같은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고 반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형제에게 미련하다는 말을해도 안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미련하다는 말 들어봤습니까?” (아멘)

! 상당히 미련한 사람이 많이 있군요.” 그런데 외부에서는 여기를 한국 최고의 인텔리들만 모이는 곳이라고들 한답니다. 처음에는 미련하고 바보 천치 같은 사람만 모인다고 했었는데 이제는 아주 수준 높은 단체라고 한답니다.

그러나 여기는 미련한 사람부터 지혜로운 사람까지 다 모이는 장소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 종교인들에게 미련하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으면 미련하다 소리를 하면 지옥불에 떨어진다고 말씀을 했겠습니까?

이는 예수님께서 유대 종교인들에 대한 한맺힌 말씀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왜 이런 말씀을 하실 수 밖에 없었는지 그 분의 심정을 알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어떠한 상황 속에서 하신 말씀인지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말씀이 주님으로 부터 오는 교훈적인 말씀이니 이것을 듣는 여러분들은 참으로 복 있는 자입니다.

 

여러분들 집에서 형제끼리도 서로 싸우고 하다가 나가라고 하면 나갑니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어서 부모님이 찾으시면서 물으면 모른다고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가 찾아오라고 하면 겨우 나가서 형제는 동쪽에 있는데 서쪽으로 가서는 부모님들이 집안에서 듣게끔 몇 번 큰소리로 불러보고는 그냥 들어옵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나가서 찾아옵니다.

그렇게 되면 내쫓은 사람은 금방 들통나게 되는 것 아닙니까?

이런 입장을 생각하면서 전체를 이해해야 되겠습니다.

 

너희는 예물 제단 드리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것이 있다면 먼저가서 원망을 풀어 화해하고 제물을 드리고 했습니다.

제아무리 제사장, 서기관이라 할지라도 법에 의해서 심판 받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제사장이라고 남의 죄는 용서해 주지 않고 자기죄는 용서해주는 비양심적인 지도자들!

그리고는 양 한마리 놓고 화목제를 드린다고 드리면 그런 형식과 외식적인 제물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벨의 호소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 잘못된 지도자들을 심판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획이라도 빼놓고 쓰면 성이 바뀌어서 호적까지 고쳐야 되는 일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한 획이라도 남김없이 모두 해결을 보라는 것이니 이렇게 하는 자가 복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것들은 주님께서 신앙인들이 옹졸한 마음을 지적하신 것으로 그런 마음으로는 신랑도 황태자도 메시야도 맞아들이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간음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느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육체의 간음뿐만이 아니라 여자를 보고 음욕만 품어도 간음한 것이니라.”(5:27-28) 라고 말씀했습니다.

 

구약 때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 있었죠.

그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짐으로 인간이 사람을 주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탄이 육신을 다스리고 주관하는 것이니 음욕뿐만이 아니라 간음까지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영을 구원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음욕이 아닌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형제된 입장에서 위해주고 섬겨주어 왕과 같이 제사장과 같이 대해주면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종된 입장이기에 그렇게 간음하며 지냈지만 신약에서는 아들된 입장이니 형제끼리 음욕스런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봉사끼리 음란행위를 했는데 둘이 눈을 뜨고 보니 형제관계 였다면 그 뒤로 다시또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이제 이 말씀 듣고 전환이 되어서 생명이 살아난바 되면 이제까지의 음욕에 대한 문제는 모두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5:29-30을 보면 네 오늘손이 너를 실족케하면 빼어내 버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오른눈 범죄하면 그 눈은 빼내버리고 한쪽 눈만 가지고 저 천국 향하리라.”라는 노래까지 나왔지요?

이것을 문자대로 풀면 잘못했을 때는 손까지 자르고 천국가야 된다는 입장인데 꼭 이렇게 잔인한 짓을 해가면서 천국에 가야 될 필요까지는 있겠습니까?

 

이 말씀은 비유로 쓰여진 말씀이니 이것을 풀면 우리가 어떤 것을 하는데 100개를 해야 되는데 99개만하고 1개는 못했다고 합시다.

이 한 개로 인해 99개도 안하거나 마찬가지의 결과가 되니까 전체를 망치게 되는 이 한개 까지도 완전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전체를 위해서 누가되는 작은 것은 를 위해서 를 없애버려야 된다는 것이니 만약 우리가 의인이 되는데 있어서 성격적인 데서 잘못된 것이 간혹 가다가 큰 실수를 범하고 상대에게 피해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자신의 성격을 뜯어 고치라는 겁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를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구약 말씀에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으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는 손해를 입은 만큼 손해를 주라는 것입니다.

손해를 입은 사람이 직접 일을 감행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이 율법으로 감행하는 것입니다.

오른 뺨을 때리면 왼뺨도 돌려대도록 하라.’ 이 말씀을 문자대로 푼다면 누가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마저 때리라고 돌려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 하면서 이런 적이 몇 번이나 있었습니까?

아마 이런 일을 당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한번도 없었던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진짜로 이것을 행했다면 참느라고 얼마나 심정이 타고 어려웠겠습니까?

이 말씀을 이루기란 정말 대단히 힘든 일일 것입니다.

 

네 이웃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네 원수까지 사랑하라.’ 이 말씀을 지키기는 어려우나 이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다.

원수는 작은 원수부터 사랑해야 큰 원수가지 사랑할 수 있다.

원수 속에 하나님이 역사 하시면 어떻하겠느냐.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와같이 하느니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다가 태양이 의로운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빛을 비춰주고 모든 만물에게 비추어 줘서 사람이나 동물에게 영광을 받듯이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지 말고 모든 사람을 사랑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처럼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하라.’

하나님처럼 온전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 5장의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구제할 때도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내가 한 일을 가장 가까운 사람도 모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도 외식과 형식으로 하지말라.’ 유대인이 사람 보는 데서 형식적인 기도를 많이 하니까 차라리 골방에서 기도를 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시며 기도의 방법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또 금식할 때도 표가 나게 하지 말고 아무도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물도 세상에 쌓아두면 좀과 동록이 나게 되어 육신이 끝날 때 같이 끝나게 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늘 앞에 쌓아두어 하늘을 중심으로 해서 쓰도록하라.’

주님은 말라기 310절에 나오는 십일조의 말씀도 하시며 이것도 하고(영적) 저것도(육적)해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느니라.’

지금은 머뭇거릴 때가 아니니 구약과 신약중 어느 편에 서던지 바로 서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목숨을 위해서 염려하지 말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이것이 6장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7장에 보면 비판하지 말라.’

비판하는 사람은 눈의 티같은 비판거리를 보고 비판하지만 자신에게는 들보 같은 비판거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를 비판하다가 다른 곳으로 부터 오히려 난절하게 비판 받은 사람들이 있는데 다 이 말씀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

진주는 말씀으로 진리의 말씀을 갖고 있는 사람을 염려해서 하신 것입니다.

돼지는 부정한 것을 의미합니다.

부정한 사람에게 진리를 주지 말라는 것은 그때 당시의 유대 종교인들의 상황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돼지는 머리통은 크지만 생각은 좁고 미련합니다.

돼지는 무조건 달라고만 하고 감사가 없습니다.

개는 먹이를 줄 때 뿐만 아니라 항상 주인을 보고 꼬리를 흔들며 대해주는데 돼지는 먹이를 줄 때만 꼬리를 흔듭니다.

돼지는 지구상에서 더러운 것을 가장 좋아하는 동물입니다.

돼지는 껍데기, 썩은 것, 꾸정물만 먹고 삽니다.

유대 종교인들은 이방인을 돼지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유대 종교인을 돼지라고 했습니다.

 

찾을 때 찾고 구할 때 구하고 문을 두드릴 때 두드리라.’그러면 반드시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열매 갖고 나무를 알아보는 것처럼 사람은 행실, 결과보고 알아본다고 했습니다.

저 나무가 무슨 나무인가 앉아서 점만 치고 있지 말고 무슨 열매가 열리나 부지런히 거름을 주라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에서 엉겅퀴를, 엉겅퀴에서 무화과 나무 열매를 못 열듯 좋은 열매를 여는 것은 좋은 나무인 줄 알도록 하라.’ ‘너희가 나를 못 믿어도 말씀은 믿도록 하라.’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말씀 듣고 많은 사람이 따라 오니까 열매가 좋다고 하면 나무도 좋다고 해야 되지 않겠냐며 예수님은 생명나무로 오신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반석위에 집을 짓지 않으면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무너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반석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기초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조금만 비가와도 금방 무너지게 됩니다.

한강 모래위에 집을 지으면 봄에는 괜찮지만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에는 기초가 없어서 순식간에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모든 말씀을 마칠 때 모든 사람이 이는 가르치는 것이 서기관과 같지 않더라.’며 놀랐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예수님이 20-30분 설교를 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틀린 생각이고 예수님은 몇 시간씩 설교를 계속하셨습니다. 내가 핵심만 전해도 2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예수님은 얼마나 오랫동안 설교 하셨겠습니까?

 

< 기 도 >

 

주님이 바라고 원하는 것하고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것하고 어느것이 더 클까요?

많이 뿌린 자가 더 기대가 크다는 것을 생각할 때 주님의 엄청난 기대를 어떻게 이룰 수 있겠습니까?

이는 점진적으로 이루어 질 것을 믿습니다.

주 뜻이 이루어질 때에 우리 뜻도 이루어질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잘 하라고 해도 안되니까 이제 다시금 기본을 가르치는 입장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여기 있는 모든 자와 전국의 모든 사람과 해외에 있는 자까지 주의 한량없는 사랑과 은총을 크게 더해 주시옵소서.

주님 앞에 난처한 일이 없도록 모두 사명 감당할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자와 심정이 상하면 엄청난 거리가 생기게 된다고 했습니다.

애인일 수록 서로 심정 상하게 하는 일이 없어야 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좌측뺨, 우측뺨의 말씀으로 속을 거듭 상하게 하는 자도 용서해주며 잘 대해 주라고 했습니다.

항상 서로 위해주며 갈 수 있어야 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의 감동 감화하심이 이 말씀을 듣고 일어선 자들 위해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친구 따라 온 자들까지 주의 은총과 사랑이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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