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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감동과 지혜가 가득한 설교 3 (시대따라 새롭게 변화하라)

by 성경토크 2024.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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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따라 새롭게 변화하라

로마서 12장의 말씀에 새롭게 변화하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변화하는 것이 가장 좋은 변화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성경본문

《 본 문 》 롬 12 :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장 2절의 말씀을 봉독 했는데 2절뿐만 아니라 시대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대(大) 뜻이 있기로 신 구약 성경을 거침없이 파헤쳐 값 없이 여러분에게 선물로 이 주일도 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오늘 하늘로부터 여러분에게 크나큰 은혜를 끼치는 말씀을 받아가지고 왔습니다.


말씀 시작
        

오늘은 로마서 12장의 말씀으로서  한 주일의 나침반을 삼게 되었으며 이 말씀을 중심하여 구약 신약 현시대에 이르기까지 하늘의 역사(役事)하심을 우리가 경청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가을의 단풍이 변화하듯 홀연히 변화하라.

이 나라는 가을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를 거동할 수 없는 추운 겨울을 생각하여 미리부터 돌아다니며 한창 단풍놀이를 하느라 산마다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는 계절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여호와의 거룩한 산에 오르고 있습니다.
다들 단풍놀이 하느라 산으로 들로 나갔지만 여러분은 거룩한 산에 오른 등반자들이 되었습니다.
이제 물을 찾는 시기는 지났고 산을 찾으면서 지난 1년을 회상하고 미래를 예비하는 계절입니다.
여러분, 오늘 하늘이 여러분에게 신령한 단풍놀이를 보여줄 것입니다.

여러분들, 가을 산을 쳐다보면 생각나는 것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가을 산에 대한 문학적인 표현이 각각 다양하고 다를 것입니다.  
새신자 여러분들은 가을 산을 쳐다보면 어떤 표현을 하고 싶고 어떻게 말하고 싶습니까?  사람이 생각난다고요?  
하나님의 창조능력의 신기와 오묘함을 느낀다구요?  
한 성도가 변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는데 바로 그것이 정답입니다!
정답이 나왔으니 더이상 묻지 않고 그대로 말씀을 진행하겠습니다.

산을 쳐다보면 변화(變化)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변하고 있는 줄 압니까?  
색깔이 변한다, 울긋불긋 변한다, 옷을 갈아입는다 등등 표현이 다양하지만 홀연히 변한다는 것이 아주 문학적인 최첨단으로 맞는 표현입니다.
산에 가서 가을 산을 보니 홀연히 변화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후다닥 꿍작작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홀연히 변하더라는 것입니다.

“홀연히 변화한다!!”

성경을 풀려면 문학적인 표현이 풍부해야 합니다!
문학을 잘하는 사람처럼 풍부해야 됩니다.
그래야 성경을 그 나름대로 오묘하게 신기하게 밝혀 말씀을 할 수 있다고 나는 확실히 주장하고 싶습니다.

가을 산은 창조주의 색소 원리를 통해서 홀연히 변합니다.  
여름내 물을 빨아들였다가 가을이 되면 물이 말라 들어갑니다.  
물이 차차로 빠지면서 잎사귀가 마르고 그 색깔도 변하게 됩니다.   
그것을 보고 단풍이 든다는 등 여러 가지로 표현을 하지요.

가을이 되면 나무는 사람이 나이를 먹어 살이 빠지듯이 물이 죽 빠집니다. 
사람이 나이들면 몸무게가 줄어듭니다. 그러면서 살 색깔도 변합니다. 
사람 몸에 단풍이 든다는 것입니다. 나무와 같은 단풍이 들지는 않지만 인생도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가을 산은 자연의 색소 작용을 통하여 변화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오색찬란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두고 “아름답다”고 표현을 하기도 하고 “기기 오묘하다”라고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참, 눈부시네” “아유 신기하게 변하네” “말할 수 없이 여러 가지 색깔이 많구먼” 하고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또 막 표현을 하면 “기괴 망칙하다”고 하기도 하지요.(웃음)

하늘은 자연을 통해서 여러가지 색깔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걸 사람들이 보고서 여러가지 색상을 만들지요.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12가지 색상의 크레용이면 만족했는데 지금은 12가지 색상 갖고는 표현을 할 수가 없습니다.  
자연을 보면 12가지가 아니라 수백 종류의 색깔을 찾아볼 수 있고 거기에서 자연의 오묘함을 볼 수 있습니다.
변화하니까 아름답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싱싱한 산천초목이 변해버렸습니다.  
변할 수 없을 것만 같이 싱싱했던 산천초목이 변화하고 있고 얼마가지 않으면 그나마도 더 변해서 보잘것없는 누런 색깔로 , 더 나중에 가서는 그 누런 색깔도 거무죽죽하게 변해서 산이 한 가지 색깔로 보이게 될 것이고, 그리고 더 나아가서 바람이 불면 그나마도 다 떨어져 버리고 앙상한 나무만 보이는 세계로 점점 변해갈 것입니다.  
작년도에 변했듯이 올해도 변할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변하고 말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의 “너희는 이 시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면서 변화를 받아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를 꼭 분별하도록 하라” 하는 본문 말씀을 찾게 되었고 “새롭게 변하여라”는 주제의 말씀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제 산천초목을 보면 거진 다 옷을 갈아 입었습니다.  싱싱하던 상록수도 거 반다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물론 상록수는 다는 갈아 입지 않습니다.  다는 갈아입지 않더라도 묵은 것은 꼭 갈아입습니다.  
묵은 솔잎사귀는 눌러름하니 툭 툭 툭 떨어집니다.  
그래서 봄에 보면 그 시퍼런 솔나무 밑에도 낙엽이 많이 쌓여 있습니다.
그것도 낙엽이 지니까 쌓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상록수는 몽땅 갈아 입지는 않지만 그래도 1년 될 때마다 갈아입습니다.  
묵은 잎사귀는 떨어지고 또 나무는 커서 뻗어가고, 묵은 잎사귀 떨어진 다음 가지 끝에는 또 새순이 올라옵니다.
이러면서 점진적으로 큰 거목이 되지요.
만일 그렇게 낙엽이 지지 않는다면 그 나무는 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산천초목은 거의 다 옷을 갈아 입습니다.  만물은 다 옷을 갈아입습니다. 식물의 세계는 옷을 다 갈아입습니다.

  “변화를 준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적인지 모릅니다.  
변화를 줄 때마다 더 마음이 풀리게 되고 더 쳐다보고 싶고 더 매력을 느끼게 되며 더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변화를 주지 않을 때는 그만큼 감동과 감화를 못준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4계절이 있기로 환경 변화가 많아 그로인해 사람의 생각도 변화시키고 행동을 변화시키며 문화권까지 변화를 시킵니다.  
그러나 열대지방 풀이 찌는듯한 더위만 연속되는 곳에서는 특별한 변화가 없기 때문에 짜증도 나게 되고 머리도 아프게 되고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그런 곳에 살지 않고 이런 4계절이 있는 곳에 사는 것도 복중의 하나입니다. 
계절마다 우리는 크나큰 변화를 받게 되고, 생각이 깊어지게 되고, 철학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뭐인가 깊이 깨닫게 됩니다.  
아무튼 이런 의미로 볼 때 좋은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

우리가 본문과 더불어 자연의 변화를 보면서 심령적으로 깨우쳐야 될 것이 있다면 자연이 옷을 갈아입고 변하듯이 우리도 변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게 되면 옷을 갈아입게 됩니다.

정신이상이 되어 미친 사람에게 마음에 본(本)정신을 자꾸 넣어주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본 정신이 돌아오면 깨끗하고 좋은 옷으로 갈아입으려 하고 더러운 옷은 벗으려 합니다.  
생각과 행동이 변화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을 여러분들은 많이 겪어봤을 것입니다.

아픈 사람이 건강하게 될 때도 그러합니다.  
아플 때는 그런대로 상관 없으나 건강하게 되고 마음에 새롭고 건강한 본래의 정신이 들게 되면 의상에도 신경 쓰고 머리도 감고 목욕탕에도 가고 시원찮으면 사우나도 가고 그래도 시원찮으면 온천으로 백 리 길을 달립니다.  
이와 같이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본인의 심령 기준에 따라서 변화가 일어나더라는 것입니다!
변화를 주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은 주일이라고 여러가지로 변화를 주고 왔지요?  
가을 색상을 맞추느라고 의상에도 신경 쓰고 얼굴도 여러 가지로 가을 색깔에 맞춰 화장을 하고 계절 따라 이곳저곳에다 포인트(point)를 주고 왔을 것입니다.  
잘한 일입니다.  변화를 주는 것은 참 좋습니다.  
변화를 주니 보는 사람도 좋고 영광을 받는 하나님도 좋으실 것입니다.  
여러분, 가을이 되어 의상에 변화를 주고 행동에도 변화를 줘야합니다!
똑같은 것은 지루하기 그지 없습니다.  
똑같은 말, 똑같은 행동, 똑같은 의상이 연속되면 지루함을 줍니다.  
호기심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새로움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트레스(stress)만 더 쌓이게 합니다.  
그러므로 때에 따라 변화를 꼭 줘야 되겠습니다.

계절 따라 만물이 변하고 산천초목이 변하는 것은 순리(順理)입니다.  
순리는 역리(逆理) 보다 강합니다!  우리도 순리에 따라 살아야 되겠습니다.  
때에 따라서 옷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계절에 맞는 옷을 입듯이 그 시대에 맞는 행실을 하라고 계시록에서 엄격하게 말씀했습니다.
“너희 옷은 너희 행실을 말함이니 옷을 갈아입어라!  의로운 자에게는 깨끗하고 정결하고 빛나는 세마포 옷으로 갈아입혀 줘라.” 했습니다.(계 19:8)
우리들이 새로운 의(義)의 옷을 갈아입어야 되겠고, 시대의 옷을 갈아입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시대의 옷을 갈아입고 말씀을 중심한 마음의 변화를 받아서 보다 새롭게 의상이 바뀐 줄 압니다.  
영적인 의상, 행동의 의상이 바뀌었습니다.

 

홀연히 변화하라


고린도전서 15장을 보면 ‘홀연히’하는 단어가 나옵니다.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는 주(主)께서 오시면 사람들이 홀연히 변화를 받되 주께서 생명의 말씀을 외치시매 그들이 변화함을 받게 된다는 이런 말씀입니다.

어떻게 변화를 받게 되는고 하니 번개불에 콩 구워 먹듯이 후다 닥닥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너도 모르게 며칠 사이에 홀연히 변화되더라는 것입니다.  
홀연히 변하면 변화되는 것이 잘 안보입니다.  
며칠 있다 보면 변화되어 있고, 또 며칠 있다 보면 변화되어 있고 그런 것이지 갑자기 생벼락 때리는듯한 변화가 아닙니다.
  ‘홀연히’라는 것은 ‘점진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마치 일주일 후에 산에 가 보면 단풍이 언제 들었는지 모르게 들어있듯이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말씀을 통해서 혹시 이런 변화를 맛보았습니까?  (아멘)  
여러분들 자신의 것도 잘 알지만 여러분들 전후좌우의 사람들이 변화하는 것을 본 일이 있습니까?  (아멘)  
그렇다면 말씀의 주인들인 것 만큼은 틀림없습니다.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고전 15:51) 
여러분들은 그런 나팔 소리를 들어 봤습니까? 
생명의 나팔 소리, 정말 말같은 소리, 정말로 하늘도 땅도 감동 감화되고 동요할 수 있는 말씀, 자신이 그 말씀에 휘말려 들어갈만한 말씀을 들어봤습니까?  
그런 생명의 말씀을 통해서 홀연히 변화되게 되며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을에 누런 잎사귀를 다 떨어뜨리게 되면 죽은 가지에서 새 잎이 나서 또 살게 됩니다.  
이와 같이 그런 현상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현상을 맛보았습니까?  새싹이 났습니까?  
포기했던 것이 다시금 새롭게 진행되어 새싹이  나듯이 줄기찬 희망의 싹이 나며 줄기찬 꽃이 피며 거기에 열매를 맺는 그러한 인생 삶의 현상을 맛보았습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틀림없이 나팔 소리가 나지 않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며” (고전 15:52)
여기서의 죽은 자란 기능이 마비된 사람을 말합니다.
곧 마음의 기능이 마비되고 행실의 기능이 마비된 자들을 말합니다.
그런 자를 의학자들이 볼 때는 병명이 안 나옵니다.
그런 사람들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의학자들이 볼 때는 찾아볼 수 없으나 영적인 의사가 진단해 볼 때는 찾아볼 수 있는 병, 그것이 무슨 병이냐?  
바로 사망권의 죽음의 병을 말합니다.  
그런 사망권에서 생명권으로 옯기는 것이 바로 살아나는 것인데 죽은 자가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변화를 말한 것입니다.

변하는 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새 차(車)가 하루 아침에 헌 차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3년씩 계속 쓰다보면 홀연히 헌 것으로 변하면서 사라지게 됩니다.  
또 차를 만들 때에도 이 부속품, 저 부속품 끼우다 보면 홀연히 차가 되어있습니다.  
차를 만드는 사람들은 잘 이해가 갈 것입니다.

이와 같이 두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홀연히 옛 것으로 없어져 버리거나  홀연히 새것으로 되는 이 두 가지는 다 여러분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은 과거가 홀연히 없어지고 홀연히 새 것으로 변화를 받았습니다.  
언제 받았는지 모르게 홀연히 그렇게 되었습니다.  믿습니까?  
주관이 바뀌고 사상이 바뀌면서 행동도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현실까지 여러분 나름대로의 사람이 되어 올라온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들이 주인이 되어 말씀을 들으니까 잘 이해될 것입니다.
오늘 처음으로 친구를 통해서나 소문을 듣고 이곳에 처음 온 사람들도 말씀을 들으면서 이 순간에 뭐인가 홀연히 변화를 받을 것입니다.  
무한한 변화가 있을 것이며 마치 헌 것이 새 것이 되도록 크나큰 변화가 일어나고야 말 것입니다.  
그리고 헌 누더기 옷을 새롭게 갈아입은 것 만큼이나 변화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홀연히 변화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리고 살같은 세월, 유수 같은 세월 속에 홀연히 컸습니다.  
홀연히 커서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고 축복 가정들이 되고 어른들이 되었습니다.  
홀연히, 점진적으로 변해 왔습니다!  
계속 옛 것이 사라지면서, 육적인 세계가 사라지면서 영적인 세계로 자꾸 변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상에서 영적 삶을 계속해야 됩니다!  
육적인 세계가 날로 날로 홀연히 사라지면서 새롭게 영적인 세계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홀연히 흰머리가 하나씩 나는 일도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흰머리가 하나씩 하나씩 나는 사람들이 있지요?  
아마 그것도 색소의 원리에 따라서 가을이 돌아왔나 봅니다.  
여러분들이 흰머리 나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 노화현상으로 나는 것이라고는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특수한 피부 색소에 의해서 일어나는 현상이고, 나이가 50,60 된 사람들은 정상적으로 홀연히 생긴 것입니다.
        
옛 것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기성의 옛 누더기 옷을 벗어야 됩니다.  
기성의 주관과 성서의 해석법과 하나님을 섬기는 법 등 벗어야될 것은 완전히 벗어야 됩니다!

변화를 줄 때에, 다시 말하면 포인트(point)를 줄 때에 이상적인 역사가 일어나고 불꽃같은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변화가 필요한 기독교

오늘날 기독교는 2천년 동안에 너무 변화가 없었습니다.  
변화가 없으면 되겠습니까?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무엇인가 색다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 말씀이 그 말씀으로 변화가 없으면 안 됩니다.
 2천년 역사 가운데 우리 종교 역사는 별로 변한 것이 없습니다. 
변했다기보다 오히려 더 못하게 되고, 더 시궁창으로 빠져 버렸습니다.  
주님이 계셨을 때는 그래도   엄청난 진리와 꽃피는 역사의 뜻이 있었고 굉장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변한 것이 없습니다.  동일합니다.
       
너희는 구시대의 구닥다리를 본받지 말라!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고 내 말 좀 들어보라!
말씀 들으면 변화되니 말씀 듣고 변화를 받아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 어딘가를 분별하도록 하라!
너희들이 분별이 없어서 오늘은 세례요한에게로, 내일은 또 나한테로 오려고 하느냐?
변화를 받아라! 어떤 것이 기준자인지 모르고 왔다 갔다 하려느냐? 여기는 진짜, 저기는 가짜다!
기독교야, 변화를 받아라!
지금은 은혜를 받을 만한 때이고 변화될 만한 때입니다.  
변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변화받지 않으면 크지를 않고 희망이 없습니다. 호기심을 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때를 모르느냐? 어찌해서 너희들은 때를 모르느냐? 남의 것도 아니고 하늘의 사고와 사상을 받고 피를 나눈 자 들아, 왜 하늘의 때를 모르느냐?” 하시며 책망하고 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때와 시기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시대의 때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와 시기를 알아야 합니다!  
철부지들이나 때를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아주 어린 유아들이나 때를 모르고 겨울철에 여름 옷을 입고, 여름 때에 겨울 옷을 입고 아무 때나 갈아입으면 되는 줄 알고 비지땀을 흘리며 돌아다닙니다.  
때를 모르고 아무 때나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어린 철부지기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에겐 심령의 고통이 오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행히도 시대의 때를 이 만큼이라도 아니 숨통이 터지고 그래도 계절 따라 하늘의 체면을 세우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활된 모습입니다.  
부활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죽었는데 다시 살았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일입니까?
어떻게 다시 살게 되었습니까? 
모험으로, 새 진리를 받아들임으로, 과거의 주관을 없앰으로, 자기가 과거를 죽임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자기 주관과 사고가 잘못 되었으면 버릴 줄 알아야 하는데 버릴 줄 모르면 안 됩니다.  
자기의 사고(思考)를 가지고 있으면 사고(事故)가 납니다.  하나님의 사고를 가져야 합니다.


시대 따라를 새롭게 변화를 받으라! 더 변화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더 변화를 받으라! 믿습니까?
몽롱한 가운데 있지 말고 더 변화를 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시대 따라 더 변화를 받으라! 홀연히, 점진적으로 변화를 받아야 됩니다.  
변화받았다는 것은 부활되었다는 것이요, 부활되었다는 것은 휴거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단어들의 주인공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믿습니까?

우리 종교도 변해야 됩니다!  
2천 년이 가도 변함이 없으면 되겠습니까?
기독교가 우리 민족 앞에 선보인 것이 100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변한 것이 없습니다.  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 이후 400년 역사인데 변한 것이 없습니다.  

 

결론 : 말씀 듣고 변화하라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이 꼭 변화를 받기 바랍니다!  
멋있게 행실로 변화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변화를 멋있게 줄 때 하늘은 더 쳐다보고 싶고 더 눈여겨 볼 수 있는 여건이 생깁니다.  믿습니까?  
헌 누더기를 입으면 안됩니다.  
거지도 옷이 두 벌은 있는데 한 벌 밖에 없어서야 쓰겠습니까?  
옷을 입을 때 축구복으로 갈아입고 배구복으로 갈아입고 일(事) 복으로 갈아입고 더 나아가서는 설교복으로 갈아입고...
이렇게 해야 여러가지 행위를 할 수 있듯이 여러분도 여러 가지로 변화를 받고서 여러 가지 환경을 따라서 변화무쌍해야 됩니다.  
가을 하늘의 오색찬란한 단풍잎과 같이  그러한 자들이 되도록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시대 말씀을 듣고 시대를 분별해야 됩니다.
어느 시대인가를 분별하고 우리 시대를 분별하면서 시대를 살아나가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시대를 분별하고 살아나가고 있지요?  
과거에 여러분이 다녔던 교회를 가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하고 있지요?  

이 주일은 우리 최대로 더 변해보자구요!  변하는 것을 감격하고 감사하면서 우리는 가야 되겠습니다.
홀연히 연속적으로 변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는 깨끗이 갈아입어야 됩니다!  
결혼할 때 신부같이 깨끗이 갈아 입어야 합니다.
사상과 행실이 빛난 세마포 옷으로, 주님의 행실로 갈아입음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자에게 하늘 아버지의 큰 은총과 은혜와 주의 사랑하심과 나의 빈 평안이 충만하고, 성령의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기  도>
        거룩하시고 은혜로우신 우리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이제 이들에게 그러하도록 가르쳐줬으니 이들이 일주일 동안 점진적으로 계속해서 행실을 빨 것입니다.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다는 것은 바로 행실을 고치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행실을 반복해서 또 고치고 또 고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거룩한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계 22:14) 
우리도 그러한 자가 되도록 축복하심을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우리 민족의 횃불이 되게 해주시고, 우리 민족은 또 세계의 횃불이 되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감사하며 기도하였사옵나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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